오웬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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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6 20:46
봐, 해답은 여기, 빨갛고 흰 것 사이에

투고일: 22. 7. 4



오웬은 무지(無知)가 싫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여실히 느껴버리고 마는 그 통제 불능의 얼빠진 기분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고장 난 메트로놈이 제멋대로 짤깍이는 소리, 전조도 없이 새까만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유성 빛, 예정에 없던 습격을 당해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피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목덜미의 끈적거리는 감촉……. 그건 오장육부를 마취 없이 해부당해 까뒤집히는 감각과 비슷했다.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오웬에겐 전부 눈엣가시였고, 때로는 참을 수 없이 역겨웠다.

 

“…뭐야, 이거?”

 

달에게 형편없는 선물을 받았다. 가끔 독에 취하듯 의식이 흐릿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면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얼굴로, 모르는 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모르는 사이에 해가 저물었다. 몸을 비스듬히 누인 침대보의 감촉은 이질적이고, 낯설지만은 않은 타인의 체취가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불을 두른 제 몸에 느껴지는 팔 하나 몫의 무게감과 곤히 잠든 남자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오웬은 그 기척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기사님.”

 

눈을 뜨고 입에 붙은 가증스러운 호칭을 속삭여도 눈앞의 남자는 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하, 시시한 얼굴. 텅 빈 웃음을 흘려보낸 오웬은 손을 뻗어 카인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한쪽 눈을 덮은 적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보고, 뺨을 건드렸다가, 입술을 스치듯이 만지는 동안에도 별다른 반응은 없다. 장난스레 코끝을 조금 간질여 보아도 옅게 눈썹을 찌푸렸다 말 뿐이다. 멍청하긴, 경계심이 전혀 없어. 중얼거리고는 침대 주변으로 시선을 옮긴다.

녹슬어 멈춘 생각의 톱니바퀴에 시각이라는 이름의 윤활유를 들이붓자 상황은 쉽게 정리되었다. 여기는……, 카인의 방이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녀석의 방에서 자고 있었던 거다. …녀석과 마주 보고 누워서.

기억은 전혀 없었으나,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잠들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달래기라도 하듯이 제 허리 위에 다정하게 올려놓은 카인의 팔을, 오웬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불결한 것이라도 집어 들듯이 쥐고 정자세로 되돌려 놓는다. 이건 무슨 종류의 조롱인가. 혹은, 동정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한, 분노를 닮은 격정이 치밀어 오른다.

 

“…내 앞에서 무방비하게 잠들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까?”

 

봐, 이렇게……. 오웬이 천천히 일어나 카인의 몸 위에 올라타도 잠든 이의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위아래로 부드럽게 들썩거리는 상체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두 손을 움직인다. 느긋한 손길로 잠옷 단추를 풀어헤친다. 곧 뜨거운 심장을 가진 남자의 체온이 흩뿌리는 애매한 열기가 손끝을 간지럽히자 오웬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쿠레·메미니》, 주문을 외우며 카인의 상반신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선을 긋는다. 평평하게 펼쳐 놓았던 두루마리 끝단이 순식간에 말려 들어가듯이, 선을 따라 깔끔하게 갈라진 살가죽이 양쪽으로 벌어진다. 갓 만든 토마토 수프처럼 뜨겁고 점도 높은, 새빨간 피에 반쯤 잠겨 있는 뼈와 기관들을 천진하게 응시하던 오웬은 고개를 들어 카인의 눈치를 살핀다. 여전히 잠든 채고, 기색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기사님의 가슴을 가르고 피부를 잡아 벌리는 동안, 사지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법을 잠시 걸어 두었다. 손장난만 조금 쳐 본 뒤에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을 생각이고, 중도에 깨는 건 조금 곤란하니까.

오웬의 생각은 강렬하면서도 단순하다. 녀석의 심장을 보고, 만지고, 그 온도를 직접 느껴 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비로소 모든 궁금증이 풀리면, 그것을 쥐어뜯어 움켜쥐고, 손아귀에 넣어 주무르고, 끈적하고 축축한 살덩어리를 씹어 삼켜버리고 싶다.

뒤틀린 욕망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어 버리기 전에, 오웬은 쯧, 혀를 한 번 차고 고개를 젓는다. 몸을 숙이고 망설임 없이 뻗은 손이 단단한 것 앞에서 멈춰 선다. 희고 딱딱한 것이, 낯설지 않은 재질이다.

 

“…갈비뼈가 방해돼.”

 

서너 개쯤……, 아니, 모조리 부러뜨려 버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기들은 건드리지 않았고, 골절상이라면 전 기사단장으로서 몇 번이고 겪어 봤을 터. 더군다나 녀석의 치료를 도와줄 사람들은 이 근방에 널려 있고, 여차하면 또 피가로를 부르면 된다.

하지만 부러뜨린 뒤의 상황을 상상하니 영 달갑지 않다.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다쳐서 칼도 뽑지 못하는 상태로 쓰러져 있는 기사님과, 필사적인 눈을 하고 그의 무사를 비는 관계자들. 뻔하고, 따분하고, 그럼에도 조금은 애가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 죽도록 성가시다.

아아, 짜증 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오웬은 카인의 갈비뼈에 걸고 힘을 주려 했던 손을 떼어낸다. 기사님의 심장을 만져 볼 기회 정도는 또 생기겠지. 짓궂은 장난을 생각해낸 악동처럼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 뼈에 낙서나 잔뜩 새겨 줄게.”

 

갈비뼈가 온통 나의 흔적으로 뒤덮이는 기사님이라. 스스로 가슴을 갈라 보지 않는 이상은 확인할 수조차 없는 저주를 심는 거다. 실로 자신다운 분풀이가 아닐 수 없다.

조금의 흠도 없이 매끈한 흰색으로 빛나는 이 뼈는 나만의 도화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불온한 문장이라면 수도 없이 알고 있다. 푸른 달이 하늘에 떠 있는 시간, 밤은 길다. 어떤 것부터 새겨 주는 게 좋을까. 한껏 들뜬 채로 견적을 가늠하고 있을 때, 별안간 카인의 손이 움직인다. 오웬은 자신의 팔을 붙잡으려는 듯 떠오르는 녀석의 팔을 탁, 조금은 거칠게 쳐 낸다.

 

“…잠버릇이 나빠, 기사님.”

 

깬 줄 알았잖아.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카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확실히, 아직 잠들어 있다. 하지만 녀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안색이 나쁘고,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다. 갈라서 직접 들여다본 카인의 몸에는 특별히 상태가 나쁜 곳은 없었으니,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니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불현듯 오웬의 뇌리에 과거의 장면이 스친다.

 

“이건……,”

 

카인의 꿈을 눈치채는 순간, 목덜미가 서서히 조여 오듯이 오싹거리기 시작한다. 합에서 밀려 쓰러지고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이 자세,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기색, 분해 하는 듯한 얼굴……, 이미 본 적이 있는 기사님의 추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날, 오웬은 카인의 눈을 빼앗았다.

올려 웃은 입꼬리가 떨린다. 기묘한 흥분감이 뇌수를 찌른다. 입을 틀어막아 생리적으로 새어 나오려 하는 헛웃음을 억지로 삼킨다. 미처 막지 못한 혼잣말이 손 틈 사이로 튀어나온다.

 

“새겨 줄 필요도 없었나.”

 

《쿠아레·모리트》, 떨리는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며 손으로 딱 소리를 내자 갈라져 있던 카인의 상반신 살가죽이 다시 엉겨 붙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봉합된 기사의 가슴은, 상처를 기워낸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이 말끔하다.

오웬은 카인을 저 좋을 대로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몸을 뒤로 빼고, 머리맡에서 자신의 모자를 집어 들어 눌러쓴 오웬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다. 침대 옆에 가지런히 벗어 놓은 신발을 신고 카인의 방을 도망치듯 빠져나가다, 문 앞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카인은 앞섶이 풀어헤쳐 진 채로 여전히 자고 있다. 나에게 얽혀버린, 미련하고 안타까운 기사님에게 인사 정도는 해 줄까. 일그러뜨린 미소에 자조의 빛이 섞여든다.

 

“…기사님, 잘 자.”

 



문 닫히는 소리에 카인이 겨우 눈을 떴을 때, 방에는 자신밖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