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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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와 늑대의 시간
사유
·
2026-02-06 20:40
성준수가 늑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투고일: 23. 3. 18


비유 같은 게 아니다.

어디 가는 게 좋을지 알아봐야지 뭐. 준수가 전학 권유를 받아들인 다음 날, 점심 급식으로 육개장과 갈비찜이 나왔다. 국민과 영중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갈비찜을 두세 국자 더 떠서 식판에 담는 동안, 다른 농구부원들은 먼저 테이블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한 박자 늦게 식판을 채우고 테이블 앞으로 달려온 영중은 언제나처럼 준수의 옆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원중고등학교의 농구부원들이 줄지어 앉은 그 테이블에 성준수는 없었다. 대신 귀퉁이 한자리에, 새까만 털과 날카로운 눈을 가진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뭐야?”

“뭐 해, 영중아? 와서 앉아.”

 

다른 농구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영중에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늑대가 선 자리 옆의 빈 좌석을 가리켰다. 거긴 항상 네 자리가 아니었느냐고, 너무도 당연해서 그다지 의문을 가지지도 않는 듯한 모두의 태도에 영중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커다란 늑대가 테이블 앞에 서 있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는 건가. 국민이 반대쪽의 빈자리에 가 앉고, 평온하게 늑대에게 말을 걸 때쯤에야 영중은 가까스로 눈치를 챘다.

 

“야, 성준수 너 진짜 다른 학교 가냐?”

 

아, 이 새끼 성준수구나.

나한테만 이렇게 보이는 거구나.

 


성준수 아까 숙소에서 짐 빼고 있던데?

걔 먼저 갔어, 바쁜가 봐.

이거 봐, 준수가 이제 오래 못 볼 거라면서 사줬다. 너도 먹을래?

야, 준수 지상고 간대.

 

그날 이후로 영중은 준수와 단 한 마디도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아니, 영중은 그것을 차라리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고쳐 쓰고 싶었다. 녀석이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도 자신에게는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고, 영중에게는 짐승의 언어를 알아듣는 재주 따위는 없었다.

준수야, 네가 늑대로 보여. 그렇게 솔직하게 고백해볼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이상한 뜻으로 은유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늑대 새끼로 보인다고. 숙소 텔레비전 채널 돌리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봤잖아. 온몸이 새까만 털로 뒤덮인, 날카로운 송곳니로 피식자를 찢어 죽이는, 매서운 눈을 가진 커다란 늑대. 네가 진짜 그렇게 보인다니까. 털어놓아봤자 준수의 대답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준수는 언제나처럼, 190 조금 덜 되는, 새하얀 피부에 조금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아주 평범한 인간 성준수였다. 미친 건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영중은, 가장 손쉽고 간사한 방법을 택해서 상황을 타개해나갔다. 영중은 준수를 외면했다. 아주 철저하고 끈질기게. 녀석이 말을 걸어도(대개는 다소 소름 끼치는 늑대 울음소리였다) 대답하지 않았고,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준수는 몇 번을 더, 제법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곧 조용해져서는 제 곁을 떠났다. 영중의 선택은 효과적이었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영중은 늑대와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지 못한 준수의 소식은 다른 농구부원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학교를 알아보고 전학 절차를 밟고, 이사 준비까지 하느라 분주했던 모양이다. 준수는 자연스레 농구부 연습에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도 종종 빠지거나 조퇴를 했는지, 급식실에서도 늑대를 보는 일은 없었다. 농구부 숙소에는 곧 빈 침대가 하나 늘었다.

그럴수록 영중은 연습에 몰두했다. 꼴사납게 눈물까지 보이면서 남겠다고 소리친 대가였다. 사실 대가라기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고, 영중이 준수와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될 확률은 점점 줄어들었다. 연습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언제나 한밤중이었다. 반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비벼 닦은 영중은 주인이 없어진 빈 침대에 드러누워 몇 번 뒤척였다. 코를 킁킁거리지 않아도 흙먼지와 나무에서 날 법한, 그리고 조금은 매운 것도 같은 오묘한 냄새가 베갯잇에서 강하게 났다. 영중은 그것이 아마 늑대의 냄새일 거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더 흘렀다. 아침부터 농구부 숙소가 유독 소란스러웠다. 야, 준수 오늘이 마지막이래. 그럼 이제 부산 가는 거야? 오늘 점심시간에 농구부 찾아와서 인사하고 간다던데. 맞물려서 귓바퀴에 마구잡이로 꽂혀 들어오는 목소리들을 흘려보낸 영중은 편의점 샌드위치 반쪽을 입속에 마저 밀어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혼자 몰래 나가서 먹고 오자고.

체육계열 동아리원의 점심 외출은 어느 정도 허용해주는 분위기였다. 쉽게 학교를 빠져나온 영중은 불고기 피자 한 판을 주문해서 남김없이 전부 먹었다. 준수랑 먹을 때는 두 판 시키고 항상 애매하게 남아서 내가 더 먹었는데. 피자 한 판짜리의 적당한 포만감은 영중에게는 오히려 낯설었다.

 

“야, 영중아. 너 어디 갔었어? 준수 방금 가 버렸다.”

 

됐다.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가능한 한 느린 발걸음으로 농구 코트로 돌아온 영중은 아쉽다는 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몇 년을 함께한 친구와의 작별로는 최악이지만, 동시에 영중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아니, 애초에 의사소통도 안 되는 늑대랑 무슨 작별인사를 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무슨 꼴이었을까. 준수야 거기서도 잘 지내라. 그르릉. 야, 다음에 적으로 만나면 안 봐준다? 으르렁. 생각만 해도 웃기다. 비웃듯이 힘차게 소리 내 웃은 영중은 농구화 끈을 고쳐 묶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니 농구부원들의 배꼽시계가 일제히 울렸다. 아 오늘 학교 앞에 치킨집에서 투플러스원 행사 한다고 했는데.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

먼저들 드세요, 전 중간에 끼게. 점심으로 먹은 불고기 피자 한 판을 뱃속에서 전부 태워 없애 버릴 생각으로, 영중은 다른 농구부원들을 식사 장소로 보내고는 홀로 코트에 남았다. 어둑한 농구 코트 라인 언저리에 서서, 영중은 무료하게 슛을 던져 보았다. 몇 번은 들어가고 또 몇 번은 들어가지 않았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리 나쁜 확률은 아닌 듯했다. 농구 열심히 해야지. 농구공을 주워들고 빈 팔을 들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데 문득 끼이익, 하고 체육관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린 자리에는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이 시간에 네가 여길 왜 오는데?

 

턱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킨 영중은 침묵했다. 한 손에 농구공을 든 채로 멈추어 서서 늑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녀석도 조용히 이쪽을 응시했다. 그렇게 쳐다봐도 지금의 준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최소한 녀석의 표정이라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고개를 저은 영중은 늑대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늑대는 갑자기 영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못해도 이십 미터는 떨어져 있었을 텐데, 수 초 사이에 늑대는 제 코앞까지 와 있었다. 영중의 몸이 반응할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영중은 그 순간, 그다지 관심도 없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그것들의 목숨을 끊으려 질주하던 늑대들.

텅, 터엉, 텅, 손에서 튕겨 나간 농구공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코트 끄트머리까지 굴러갔다. 영중은 늑대가 들이박은 대로 부딪혀서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텅 빈 초저녁의 코트 바닥은 꽤 차가웠고, 쓰러진 제 몸 위에 올라타서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흘리는 늑대의 체온은 뜨거웠다. 목 언저리부터 발목까지 소름이 돋았다.

영중은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녀석이 웬 사나운 맹수가 아니라 그저 성준수일 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자기만 한 덩치의 늑대가 달려들어 이빨을 드러내며 마구 짖으니 본능적으로 겁이 났다. 그 원초적인 두려움은 명백하게 영중을 압도했지만, 동시에 이불 한 겹을 감싼 듯이 제법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영중은 상황을 이성적으로 추리할 수 있었다. 지금, 준수는 필시 자신에게 무언가를 윽박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쯤에서 맥빠진 한숨이 흘러나왔다. 육중한 들짐승의 체중이 저를 짓누르고, 늑대의 울부짖음이 점점 과격해지고, 제 어깨를 움켜쥔 발톱에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영중은 동요하지 않았다. 뭐, 나를 해치거나 잡아먹기라도 할 테야? 그렇게 할 것도 아니잖아. 영중은 준수를 너무 잘 알아서 가끔은 좀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마저 하곤 했다. 대신 영중은 속으로 되뇌었다.

 

준수야, 네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나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

 

못 알아듣는다니까?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주면 안 돼?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이 개새끼야!”

 

이, 개새끼야. 가장 상스러워서, 가장 알아듣기 쉬운 단어가 귓바퀴를 때린다. 최근 통 들을 수가 없었던 준수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서 영중이 눈을 뜨자, 늑대가 아니라 인간 성준수가 자신의 위에 올라탄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영중의 시선이, 쥐어 잡힌 제 어깨부터 녀석의 얼굴까지 느릿하게 움직였다. 낯선 사복을 입고, 등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영중을 깔아뭉갠 준수. 녀석의 몸이 짐승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건, 아마도 이 가방 때문인 것 같았다. 자기 물건을 챙겨 넣은 이삿짐 일부겠지.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준수와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자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제는 대화가 좀 될 것 같다고 예감했는지, 준수는 더는 사납게 굴지 않고 일어섰다.

 

“나 간다고.”

 

천천히 따라 일어서니 비로소, 오랜만에 준수와 눈높이가 맞았다. 영중은 부러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제일 먼저 바닥에 부딪혔던 어깨와 팔꿈치가 조금 아팠다. 준수도 마찬가지인지, 영중의 대답을 기다리며 제 손바닥과 무릎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영중은 당장이라도 학교 뒷산으로 달려가서 커다란 짱돌을 하나 들고 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짱돌을 그대로 들어서, 자기 대가리를 존나 내리쳐버리고 싶었다. 머리가 맛이 가 버리면 준수가 다시 늑대로 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서라도, 영중은 차라리 녀석을 늑대인 채로 보내 버리고 싶었다.

 

“…너 설마 나한테 그 말 한마디 하려고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거야?”

 

그러는 대신 영중은 머리가 맛이 간 시늉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녀석이 자신을 먼저 개새끼라고 불렀으니까, 진짜 개새끼가 되어 주는 거다. 싸가지 없는, 소박한 작별인사 하나 안 건넨, 더 나은 길을 향한 선택조차 유보한 한심한 개새끼.

준수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영중은 안도했다. 인간 대 개새끼로 2차전을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너는 사람이 진짜……,”

 

아니나 다를까 준수는 곧 영중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달려들 뻔했다. 영중의 빨간 농구 유니폼을 거칠게 휘어잡으려던 창백한 손이 허공에 멈춰 섰다. 영중은 그저 눈을 깜박이며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아니, 됐다. 이럴 시간 없어. 일곱 시 반 열차 타야 하는데 내가 씨발 대체 뭘 바라고 여기까지 온 건지…….”

 

준수는 조금 상심한 얼굴을 하고 돌아섰다. 영중은 예감했다. 여기서 한 마디라도, 뭐든, 말을 꺼낸다면, 녀석을 향한 작별인사 비슷한 게 되어버릴 것이라고.

 

“잘 지내라, 영중아.”

 

그래서 녀석의 푸른색 가방을 걸친 뒷모습이 체육관 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영중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서 준수가 떠난 방향을 물끄러미 응시하는데, 영중의 배에서 요란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등에 붙을 것만 같은, 순도 백 퍼센트의 허기였다. 농구부원들이 모여 있을 식사 자리로 향하려던 영중은, 발에 뭔가 걸리는 것을 느끼고 멈춰 섰다. 고쳐 묶었던 농구화 끈이 엉망으로 꼬인 채 풀려 있었다.

그래 가라 가, 준수야. 잘 가. 영중은 아까 준수에게 건네지 않은 인사를 중얼거리며 두 손에 힘을 주어 끈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준수가 닫고 나간 체육관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