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이 장치 네가 만든 거냐?”
방과후의 어느 저녁, 츠카사가 2학년 B반 뒷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루이는 사물함 속에 교과서를 꾸겨 넣고 있었다.
츠카사의 손에는 낯선 스위치가 들려 있었다. 별다른 꾸밈이 없는 회색 몸체에 크고 빨간 버튼 하나가 달린, 매우 간단하고 고전적인 형태였다. 사물함 문을 닫고 일어선 루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처음 보는 물건이네. 어디서 났어?”
“방금 학생회실을 청소하다가 발견했어. 뭐, 그냥 장난감 같긴 하다만……. 조잡하게 생긴 게 오히려 불길해서 말이지. 네가 만든 폭파 장치라도 되려나 싶어서.”
나는 츠카사 군에게 그런 이미지인 거야? 장난스레 푸념하며 울상을 지어 보이던 루이는 곧 츠카사에게 스위치를 건네받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 단순한 것이라도 관찰은 항상 진중하게. 정육면체 형태의 몸체를 돌려 보니 측면에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것이 눈에 띄었다.
버튼을 눌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누른 사람의 정신은 이공간의 『지하 던전』으로 워프한다. 『지하 던전』은 총 1000층으로, 엘리베이터나 지름길 따위는 없다. 그곳에서는 몬스터의 공격으로 신체가 조각나고, 터지고, 녹아버리더라도 곧바로 다시 재생된다. 한 층 한 층, 인간성을 내던지며 계단을 올라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 쉼터도, 조력자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에 도달하는 순간, 처음 버튼을 누른 그 장소에 돌아오게 된다. 시간도 몸도, 이전 그대로.
그곳에서의 기억도 전부 지워진 채로.
“……흐응, 재미있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이야기야. 『5억 년 버튼』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 만든 장난감이려나. 하지만 금전적 보수가 없다는 점에서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행동하도록 유발하는 부분이 있으니 심리학적으로도……,”
“가능하다면 네가 내부를 열어서 조사를 좀 해 줬으면 하는데.”
츠카사는 흥미가 생긴 듯이 정신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한 루이의 말을 끊었다. 응? 고개를 돌린 루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츠카사와 눈을 마주쳤다.
“이걸? 굳이 그래야 할까 싶네.”
“아니, 이대로 내가 가져가기도 좀 그러니까. 학생회실에 돌려놓았다가 누가 장난삼아 눌러서 뭔가 폭발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뭐, 확실히 그렇긴 하지. 말 나온 김에 폭발하는 버튼도 직접 하나 만들어 줄까, 츠카사 군? 후후후…….”
“만들어 달라고 하겠냐!”
뭐, 나도 꽤 궁금하기도 하고. 윽박지르는 츠카사를 뒤로 한 루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머니 속에서 맥가이버 드라이버를 꺼냈다. 스위치 바닥에 붙은 볼트 홈을 들여다보고, 곧 맞는 드라이버를 찾아 손쉽게 장치를 해체해 나갔다. 혹시 모르니 버튼은 누르지 마, 노심초사하며 말을 얹는 츠카사의 목소리에 웃음이 샜다. 평소에 너무 겁을 줬나, 자제해야겠네. 진정성 없는 반성을 하다 보면 곧 장치 바닥이 달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
몸체 안쪽은 다소 어두웠다. 휴대전화 빛을 이용해 내부를 꼼꼼히 비춰 본 루이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냥 플라스틱 모형이야, 츠카사 군. 봐, 내부가 텅 비어 있어.”
“……과연, 위험한 장치 같은 건 전혀 붙어있지 않군. 뭐야, 100엔 샵에서나 팔 법한 모형 스위치로 쓸데 없는 장난이라도 친 건가.”
“누르면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나오는 진부한 트릭 정도는 기대했지만 말이야, 시시하네.”
시시하네, 를 끝으로 루이는 미지의 장치를 향한 일말의 흥미마저 잃었다. 바닥을 원래대로 다시 조립한 스위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자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츠카사였다.
“뭐 어때, 위험한 것보단 낫지. 다음에 우리 쇼의 소재로 활용이라도 해 볼까, 하하하!”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공간의 던전에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잖아! 이렇게 꾹-,”
온갖 포즈를 잡아 가며 손을 치켜든 츠카사는 이내 달칵, 서슴없이 빨간 버튼을 눌렀다.
장치 속에서는 무언가가 튀어나오지도, 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기색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교실의 시계는 여전히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고, 선선한 바람은 계속해서 루이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흔들고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장난 전등의 스위치를 눌렀을 때와 같았다.
“……츠카사 군?”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츠카사는 말을 뚝 멈추었다. 숙인 머리 사이로 드러나는 목은 발갛게 달아오르지도, 하얗게 질리지도 않은 채 평소 그대로였다. 그저 책상에 한 손을 받친 채 다른 손으로 버튼을 누른 그 상태 그대로, 미동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츠카사 군,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녀석의 어깨를 건드리자 움찔, 몸을 떤 츠카사는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 맞닿아 처음 눈을 맞춘 순간, 루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B급 스릴러 영화를 볼 때,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흉측한 괴물이 창고 속에 숨어든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내는 장면이 또렷이 기억났다. 지금 숨 쉬었다간 반드시 죽는다. 생존자의 독백이 뇌리를 스쳤다.
“아, 아니……. 잠깐 넋을 놓고 있었군. 아무것도 아니야!”
세차게 고개를 흔든 츠카사는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방금의 오싹한 시선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제야 루이는 남몰래 참고 있었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스위치에는 아무런 장치도 붙어있지 않다. 자신이, 그리고 츠카사 군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찰나의 착각이었을까, 그 반짝이는 두 눈에서 조금의 인간성마저 찾을 수 없는 괴물의 존재가 느껴졌던 것은…….
“시간도 늦었고, 나는 슬슬 돌아가 봐야겠어. 쇼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고.”
스위치를 집어 든 츠카사는 옷매무새를 간단히 정리하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드르륵, 힘차게 뒷문을 열어젖힐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루이는 뒤늦게 츠카사를 잡아 세웠다.
“츠카사 군! 그 버튼, 나한테……,”
“응?”
교실을 나서다 말고 고개를 돌린 츠카사와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카미야마 고등학교 2학년 A반의 학급위원, 원더랜즈×쇼타임의 단장, 그리고 씩씩한 오빠이자 아들. 열정과 약간의 자만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료와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빈틈없이 가득 찬 노을빛 시선에 압도당한 루이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니, 됐어. 잘 가, 츠카사 군.”
“뭐야, 싱겁기는……. 내일 보자, 루이!”
제 눈치를 살피던 츠카사는 곧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는 뒷문을 닫고 교실을 떠났다. 한 명만이 남은 B반 교실은, 이 공간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버튼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평온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루이는 츠카사가 떠난 자리를 하염없이 응시했다. 그냥 일찍 귀가할 걸 그랬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