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 20.10.30
후속 축생
“안 먹을 거야, 츠카사 군?”
입에 넣기 딱 좋은 정도로 포크에 휘감은 파스타 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츠카사의 눈이 움직였다. 멍한 시선이 뚝뚝 떨어지는 크림 소스를 타고 내려가 테이블을 기었다. 까르보나라, 바게트, 시저 샐러드, 유리컵 한 잔, 고풍스러운 서체로 ‘21C vintage’라고 적힌 냅킨, 그리고 할로윈 특선 메뉴를 홍보하는 전자 메뉴판.
시선은 곧 메뉴 하나 시키지 않고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겉옷을 훑고 올라갔다. 익숙한 그 후드는 흙투성이에다 세게 움켜쥐면 바스러질 듯이 무척 낡았다. 츠카사는 고작 삼사 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그렇게까지 낡은 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도. 섬뜩한 기분에 두 눈이 가슴팍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야……, 고개를 들면……, 시체보다도 핏기없는 얼굴의 그 녀석이…….
텐마 츠카사는 포크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루이. 너……, 정말 죽은 건가 봐.”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곤두박질친 시선 속에서 무언가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힘없이 포크를 쥔 제 손이 거기 있었다. 불그스름한 것 같다가도 조금은 푸르고, 군데군데 오래된 피멍이 맺힌 살갗이 보였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츠카사는 1열에서 관람한 어느 B급 뮤지컬에 출연했던 주연 배우를 떠올렸다. 특수분장 하나는 정말 진짜 같았는데. 썩다 만 신체를 허겁지겁 포르말린에 처넣고 박제해버린 듯한……, 아아 그렇지.
루이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벌어지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걸?”
그건 좀비 호러 뮤지컬이었다.
찌뿌둥한 기분에 눈을 뜨고 보니 두 명이 나란히 언데드. 시간은 이미 까마득하게 흘러버린 뒤고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 전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허무맹랑한 할로윈 쇼 각본을 쓴다고 해도 이런 전개를 채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츠카사는 포크를 처음 놓여있었던 모습 그대로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미간을 짚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반쯤 부패한 제 손에서 나는 악취였다.
“그럼 에무는? 네네는?”
“…….”
“……사키는?”
“츠카사 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잖아.”
“아…….”
루이는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가리켰다. 2320년 10월 31일 일요일. 연도를 표시하는 전광판은 현실감이 없었다.
츠카사의 시선이 다시 한번 곤두박질쳤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숫자였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이 할로윈 장난이라면? 모두가 나를 놀래키려고 터무니없는 상황극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아무리 그래도 조금 지나친데. 누굴 바보로 알아. 나중에 따끔하게 한소리 해 줘야지. 굳어있던 사고회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문득 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먹을 거면 일어나자. 여기 곧 문 닫는대.”
이거 그……, 뱀파이어! 좀비! 그런 거죠? 할로윈 코스프레 제대로 하시네. 어디서 공연 같은 거 하세요?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지폐는 또 어디서 구하셨어요, 손님?
종업원이 잔돈을 계산하는 동안 루이와 츠카사는 나란히 서서 말없이 서로를 힐끔거렸다. 백지장처럼 허옇고 창백한 피부와 검붉은 색에 핏줄이 불거진 살가죽의 대비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둘은 합이라도 맞춘 듯이 동시에 시선을 홱 돌렸다. 그리고 몰래 입맛을 다셨다.
먹음직스러운 레스토랑 음식에는 동하지 않던 식욕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저 수다스러운 종업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고 싶은 원초적인 충동. 당장 살아 숨 쉬는 것을 취하고 싶은 욕망. 한 입만 물어뜯을까?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달콤한 속삭임이 뇌리를 스치며 메아리치자 츠카사의 손이 벌벌 떨렸다. 곧 루이가 그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받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맞닿은 살결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거슬러 받은 동전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아까 광장에서 극장을 봤어. 이 시간에도 엄청 붐비더라.”
격변한 거리 속에는 다니던 학교도 놀이공원도 집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번화가는 꼭두새벽까지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마녀……. 온갖 분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움직이니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겨우 광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빈 공터에 걸터앉았다.
“공연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츠카사는 내내 말이 없었다. 다만 벤치 앞에 놓인 참새 사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괜히 허리를 숙여 만져 보니 아직 따뜻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난 아직 연출을 할 수 있어. 아니, 오히려 할 수 있는 건 더 많아졌지. 츠카사 군, 너는 다시 주연이 돼서 밤의 무대에 서는 거야. 피부는 분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어도, 낮이라는 시간은 너에게나 나에게나 꽤 힘겨울 테니까.”
“야…….”
아까까지 살아 있었던 것의 사체. 츠카사는 침을 삼켰다. 아득하게 오랜 시간을 묵혀두었던 허기가 목젖 뒤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루이의 말은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각본을 써 줄래, 츠카사 군?”
그러니까……,
“네가 쓰는 이야기는 빈티지 라벨이 붙어서 팔려나가게 될 거야.”
……정말 배가 고팠다.
“복고 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잘 통해. 십 년 묵은 거든 삼백 년 묵은 거든 말이야.”
하지만 차마 그런 것을 입에 댈 자신은 없었다.
“더군다나 네가 종종 전개 속에 집어넣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야, 루이.”
별안간 고개를 든 츠카사는 루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녀석은 초연했다. 으슥한 달빛을 받은 얼굴에 조금도 핏기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 고립감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네가 그렇게 멀쩡하게 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날 선 문장을 삼키고 안개라도 낀 듯 흐릿한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 조금은 기억하고 있어. 그날도 할로윈이었잖아.”
발끝을 들어 참새 사체를 구석으로 치운 츠카사는 천천히 일어섰다.
“난 플라스틱 거미 모형이 책상에 잔뜩 붙어 있는 교실이 정말 싫었어. 왜 하필 장난이어도 그런 장난을 치는 거야? 수업을 마치고 반 친구들이랑 파티를 열 예정이었지만 그냥 서둘러서 학교를 빠져나왔어. 마침 정문 앞에서 네가 신발을 갈아신고 있었던 기억이 나.”
“……응.”
“넌 기억 안 나?”
“기억나.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잖아.”
“어. 장마철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가로등을 등지고 서니 공터 바닥에 기다란 그림자가 졌다. 익숙한 실루엣을 바라보던 츠카사는 제 손을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불그스름한 것 같다가도 조금은 푸르고, 군데군데 오래된 피멍이 맺힌, 정말 낯선, 그 살갗.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루이.”
“응.”
“우릴 죽게 만든 건 너냐?”
루이가 고개를 들자 흉하게 까지고 피가 맺힌 녀석의 입가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자기 입술을 물어뜯은 건가. 목이 말라서. 츠카사는 그 상처에서 본능적으로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죽음보다 더한, 저주 같은…….
“아니.”
사실 그렇다고 대답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냐. 헛웃음을 내뱉은 츠카사는 다시 벤치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벤치 위에 아무렇게나 흩트려놓은 동전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