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 22. 8. 27
폴몬고의 인연조
“아침에 사람을 죽였어.”
녹슨 자전거를 끌고 나란히 걸어가던 발걸음이 뚝 멈춘다. 아침 식사로 샌드위치를 먹었어. 그런 이야기를 하듯이 오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문장은 몹시 비현실적이다.
“현관문을 막 나온 참이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대뜸 멱살을 잡잖아. 놀라진 않았어. 우리 학교에선 흔한 일이었거든.”
힐끔, 곁눈질로 카인의 눈치를 살핀다. 카인은 자전거 핸들을 잡고 제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몇 분 전, 학교 근처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던 차에 녀석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면 아까 하교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났었지, 그쯤에서 적당히 집에 돌아갈 걸 그랬다. 친한 척 말을 걸어 오는 것을 외면했지만, 카인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런 녀석이 참을 수 없이 성가셨다. 멋대로 나불거리는 카인의 말을 단번에 잘라버리고 말을 꺼낸 건 지극히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드디어 좀 조용해졌나. 그제야 멈추어 선 오웬은 고개를 돌려 카인과 눈을 맞춘다.
“저기 있잖아, 왜 나한테 시비 거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볼품없을까.”
“오웬…….”
“재밌는 이야기라도 실컷 나눠 볼까 했어. 진짜야. 근데 걔는 몇 마디 주고받고 나니까 금방 괴롭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거야. 그러더니 자기 목을 스스로 조르기 시작하더라.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 놓고서는. 상상해 봐, 그림이 좀 웃기잖아? 그게 또 화가 치밀어서. 금방 의식을 잃고 쓰러지길래 집까지 끌고 가서 식칼로 마구 찔렀어.”
대답은 더 없었다. 그런 카인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웬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상대라면 오히려 다루기 편했다. 잠시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고, 처음부터 대본이 있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잔혹한 문장들을 줄지어 발화한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갈라놓은 상처가 점점 벌어지면서 내장이 쏟아져나오니까, 손은 뜨겁고, 끈적거리고, 역하고 비린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우는 게 역겨워서 재밌었어. 바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조금 정신을 차렸나 봐. 붉은 피를 토하면서 힘없이 비명을 지르는 거야. 시끄러운 게 어쩐지 엄청 짜증이 나서, 내팽개친 식칼을 주워서 목을 계속 찔렀어. 칼이 살을 난도질할 때마다 나는 축축하고 점도 높은 마찰음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이건 자신이 기세를 탈 때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나쁜 버릇이다. 어때, 무서워? 거짓말이 아닐까 봐 겁이라도 나? 성큼 발을 내디딘 오웬은 카인의 코앞에 서서 눈을 크게 뜬다. 이마를 맞대기 직전까지 붙은 채로, 얼어붙은 분위기에 박차를 가한다.
“시체, 아직 우리 집에 있어.”
줄곧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계산대 앞에 올려놓은 아이처럼, 오웬은 생글생글 웃음 짓는다.
“…와서 볼래?”
달그락, 식기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오웬은 침을 삼키며 조급한 손길로 나이프를 휘두른다. 칼날이 스치는 자리마다 진물 같은 액체가 터져 나온다. 접시는 곧 나이프가 지나간 흔적으로 엉망이 된다.
이윽고, 찐득하고 붉은 것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나이프를 입에 넣는다. 시럽은 설탕을 녹여서 만든다고 했던가. 혀를 휘감는 익숙한 미각이 묵직하게 달콤하다.
기분 좋은 단맛이 말초신경을 자극할 무렵, 오웬은 눈살을 한껏 찌푸린다. 불만 가득한 시선은 제 앞에 마주 보고 앉은 카인을 향한다. 녀석은 끈적한 것으로 범벅이 된 손을 휴지에 힘주어 닦고 있었다. 자른 것을 나누어 담는 동안 잔뜩 묻어버린 모양이었다.
손과 얼굴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던 시선이 녀석과 얽히자, 색이 다른 두 눈이 태평하게 웃는다. 아까부터 그리 좋지 못했던 제 심기를 거스르기에는 충분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미소다. 오웬은 투정을 부리듯이 쏘아붙인다.
“왜 따라온 거야?”
체리 케이크, 딸기 팬케이크, 자몽 주스, 마카롱, 슈크림 빵.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열어 본 냉장고는 그런 달콤한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좀 더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낫지 않아? 진심이 담긴 충고를 하는 카인의 팔을 힘껏 꼬집고는 잡히는 대로 꺼낸 디저트로 접시를 꾸역꾸역 채워나갔다.
나도 하나 먹어도 돼? 접시에 탑을 세울 기세로 냉장고를 비워나가는 오웬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인은 냉장고 구석에 놓인, 모서리가 찌그러진 라즈베리 타르트 조각이 든 박스를 가리켰다. 아니, 안 돼. 오웬은 매정하게 녀석의 손을 밀치고 타르트를 꺼내 제 접시 위에 올렸다.
어쩔 수 없네. 어깨를 으쓱인 카인은 제 가방을 열고는 속을 헤집어 종이박스를 하나 꺼냈다. 유명 브랜드의 도넛 세트였다. 오웬은 눈을 번쩍 떴다. 뭐야, 어디서 났어? 아까 친한 후배가 줬어. 네가 뭘 먹는데 나도 구색은 맞춰야지. 저기, 나도 그거 먹고 싶어. 위액을 덧칠한 뒤에 마구 찢은 살점을 얹어 놓은 것 같은 거. 아, 후로스티드 말하는 거야? 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서로 나눠 먹는 거 어때.
대화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짧은 협상의 결과, 후로스티드 도넛 두 개와 라즈베리 타르트 반 조각이 오고 갔다. 되로 주고 말을 갈취한 상황에서도 오웬은 심기가 불편했다. 왜 따라온 거야. 매도에 가까운 질문에 대한 카인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네가 집에 초대했잖아.”
“…장난해? 보통은 시체가 있는 집 같은 거 안 쫓아가.”
시럽이 묻은 손을 정돈한 카인은 뒤늦게 포크를 든다. 접시를 향해 조금 숙인 얼굴에 의기소침한 기색은 그다지 없다.
“별로, 정말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뭐?”
“없잖아, 그런 거.”
“…진짜 있거든. 화장실에.”
고집을 부리는 제 대꾸를 차단하듯이(그럴 리 없었으나 그 순간 오웬은 그리 느꼈다), 카인은 알맞게 자른 타르트를 입속에 넣는다. 달짝지근한 디저트를 몇 번 씹고는 삼킬 때까지, 드넓은 거실에는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그……, 오웬. 넌 그냥 나를 집에 초대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너를? …내가?”
“그래. 너, 애초에 곧이곧대로 상냥하게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
너를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라. 문장을 곱씹으며 멍하니 카인을 응시하던 오웬은 눈을 흘긴다. 스스로 꺼낼 말이야, 그거? 빈 손으로 헛웃음이 새는 입가를 가린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치민다. 포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오웬은 미간을 다시 일그러뜨린다.
“…아니거든. 빨리 그거 다 먹고 나가 버려.”
매정한 소리를 뱉어내는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타르트 맛있었어! 너, 디저트 고르는 안목이 있구나. 나중에 카페 정보 공유해줘.”
할 리가 없잖아. 현관 앞에 팔짱을 끼고 선 오웬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급조한 다과회는 그리 길지 않았다. 타르트 반 조각과 도넛 하나만큼의 시간 동안, 시시한 대화 몇 마디가 엔딩 크레딧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뻔한 화제, 진부한 질문,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의 행렬. …재미없어. 몇 번이고 되뇌는 사이 카인은 접시를 비웠고, 오웬은 먹다 남은 자신의 케이크를 놔두고 가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끄러운 목소리가 자꾸만 귀를 찔러 와서, 어쩐지 메스꺼운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는 녀석을 내쫓은 다음에, 혼자 먹어치울 거야. 다짐하며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카인을 바라본다. 상체를 숙여 신발 뒤창을 잡고 발을 밀어 넣던 카인은 문득, 고개를 들고 묻는다.
“그래서, 정말 사람을 죽인 거야? 오웬.”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나. 오웬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그렇다고 한다면?”
음성에 무게를 담는 것은 원체 잘한다. 아아, 방금은 완전히 경찰서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연쇄살인범의 담담한 자백 같은 목소리였어. 스스로의 천연덕스러움에 감탄하며 냉랭하게 눈을 흘기자, 얽혀든 시선이 동요한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이라도 해 볼까. 10, 9, 8, 7……. 숫자를 채 다 세기도 전에 카인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뛰어 들어온다.
카인은 오웬을 지나쳐 그대로 화장실로 들이닥치고는, 문을 벌컥 연다. 새파랗게 질린 옆모습. 그건 피투성이가 된 시체보다도, 토막내어 어지럽게 쏟아놓은 사지보다도 극상의 구경거리다.
“…역시 거짓말이잖아! 으스스한 농담은 그만둬.”
“하하, 바보. 그런 역겨운 거 집에 두는 취미 없어.”
조금은 보상을 받은 기분. 즐거운 시선이 현관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신발을 신는 녀석을 쫓는다. 정말 시체가 있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걸까. 이쪽을 쳐다보는 그 눈에 다른 빛이 담겼을까.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려다, 이내 관둔다. 대신 오웬은 능청스레 카인의 이름을 부른다.
“카인.”
“어.”
“오늘 너랑 함께 있었던 시간은 최악이었어.”
웃으며 지독한 말을 꺼낸다. 오웬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능한 한 최악의 배웅 인사를 생각해낸다.
“다시는 오지 마.”
문 앞에 선 카인은 잠시 말이 없다. 어리둥절한 듯이 크게 뜬 눈은 곧 살갑게 풀어진다. 뭐야, 그 반응. 입술을 깨물자 여유로웠던 미소가 일그러진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오웬!”
“안 봐.”
“그럼 모레!”
“안 본다고! 나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신바람이 나서 손을 흔드는 카인의 등을 떠밀어 내보낸 오웬은 곧바로 문을 닫아버린다. 고개를 돌리면 신발장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보인다. 짜증과 즐거움이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다. …역겨워. 오웬은 먹다 남은 케이크가 있는 거실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역시 초대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