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 21.6.24
“오늘 조금 적극적이지 않아, 츠카사 군?”
방에 들어오자마자 셔터를 힘껏 내려 닫고 선뜻 교복 셔츠를 풀어헤치는 츠카사를 바라보던 루이가 능청스레 한 마디 던진다. 오후 여덟 시를 앞두고, 좁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빈약한 노을빛이 츠카사의 맨살을 비춘다. 루이는 문득 눅눅한 먼지 냄새 같은 것을 맡는다. 유월의 끝자락, 창고 같은 방에서 끈적한 습기가 느껴지는 시기에 접어든 하루. ……오늘은, 카미시로 루이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다.
선배, 생일이라면서요. 축하해요. 학교에서 몇 명인가 데면데면한 녀석들이 말로나마 담백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에무나 네네로부터 편지와 선물도 받았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축하를 많이 받았네, 내심 소박하게 기뻐하면서도 루이는 축하는커녕 저와 말조차 섞어오지 않는 츠카사를 의식했다. 부활동을 마치고 2학년 B반 교실에 찾아온 츠카사가 대뜸 제 손목을 잡아채고선 오늘 네 집에 같이 가자, 귓가에 속삭일 때까지.
“그 커터칼, 잘 드냐?”
“으응? 그럴걸.”
“그거 들고 이쪽으로 와.”
루이는 벽에 기대어 놓은 츠카사의 가방을 힐끔 쳐다본다. 가죽으로 된 가방은 무언가 들어 있는 듯 한 구석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 생일선물 개봉식이라도 직접 해 주려는 거려나. 상대는 언제나 이쪽을 놀라게 만드는 미래의 스타. 뭘 준비했을까 기대되네. 아, 너무 기대치가 높아도 곤란한 걸까. 사실 츠카사 군이 무엇을 선물하든, 중요한 건 그쪽이 아니니까.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보라색 커터칼을 쥐어 잡고 선 루이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난다.
뒤이어 츠카사도 칼을 잡은 루이와 손을 겹치고는 천천히 웃는다. 거울 앞에 선 듯이 루이를 똑 닮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런 츠카사의 웃음에는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다. 줄곧 혼자였던 연출가는, 주연배우의 바로 그 확신에 찬 미소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닿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태평한 생각을 하며 엄지에 힘을 주어 스위치를 밀어 올리자 드르륵, 잿빛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파트너의 미소에 낯선 기색이 일렁인다.
“칼 꽉 쥐어.”
“응?”
겹쳐 잡은 손에 힘이 실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루이가 동요할 새도 없이, 칼끝은 상처 하나 없는 츠카사의 가슴팍으로 향한다. 맨살에 닿은 창백한 칼날이 노을빛에 반사되자 한 번 번쩍, 빛난다.
“……아,”
그리고 가차없이 꽂혀 들어간다.
살덩이를 베어나가는 감각이 칼을 쥔 손을 타고 여실히 전해진다.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감각이다. 지난해 생일에는 홀로 귀가해 부모님과 함께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었다. 아직 익지 않은 고깃덩어리를 자르던 그 감촉을, 루이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쿨럭, 젖은 기침소리가 울려퍼지면 곧 츠카사가 토해낸 붉은 피가 자신과 루이의 교복 셔츠를 적신다. 녀석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맞잡은 칼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루이의 얼어붙은 손을 끌어당겨 더 깊숙한 곳까지 이끌어나간다. 까득, 까드득, 뼈에 박혀서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요란한 소리를 내는 칼날, 누수가 일어난 수도관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피……. 방 안에서는 이제 역한 비린내가 난다. 아아, 윽……, 가끔 약하게 신음을 흘리며 피를 토할 뿐인 츠카사는 대체로 태연하다. 웃음기도 지우지 않은 채로.
탁 멈춰 있던 루이의 사고가 그제야, 벼락을 맞은 듯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츠카사 군! 이게 무슨……,”
“약해. 좀 더, 쑤셔박고 비틀어. 도려내서 끊어버린다는, 느낌으로. 힘, 더 세게 줄 수 있잖아?”
“왜, 왜 이러는 거야? 뭐가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뭔가 잘못했어? 너, 이러다……, 죽…….”
두근, 두근, 두근……, 미친듯이 날뛰던 심장 박동이 이윽고 예고 없이 멈춘다. 동시에 루이를 놓아 주지 않던 손에서 힘이 풀린다. 어, 어떻게……, 왜……. 앞으로 고꾸라지는 몸뚱아리를 부축한 루이는 다급하게 츠카사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대고, 목의 경동맥에 손을 짚어 본다. 숨을 쉬지도, 심장이 뛰지도 않는다. 안아든 것은 사람의 몸이라기보다는, 크고 무거운 고깃덩어리에 가깝다.
심장을 들쑤시던 커터칼을 뽑아 내동댕이치면, 찌른 부위에서 피가 솟구쳐 옷과 바닥을 더럽힌다. 루이는 자신의 손에 튄 것을 조심스럽게 만져 본다. 붉고, 뜨겁고, 물보다 조금 끈적한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파트너의 심장 속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다. ……츠카사 군이 죽었어. 쇼 같은 게 아니야.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헛구역질을 한다.
비극적인 기적은 그 순간 일어난다.
쳐다보는 것조차 감히 할 수 없었던 흉부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문다. 뜯겨나간 살점이 제자리에 붙고, 출혈이 멎는다. 잠시나마 사체 같았던 피부에도 생기가 돈다. 조금 전까지 만신창이가 되어 생명력을 잃어 가던 츠카사의 몸은, 흥건하게 흘러내린 피만 닦아놓는다면 이제 완전히 새 것처럼 되어 있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남자가, 루이의 어깨를 짚고 몸을 일으킨다. 영원히 다시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츠카사의 입술이 느릿느릿 벌어진다.
“……알겠어, 루이?”
나는 죽지 않아.
익숙한 듯 가방 지퍼를 열고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 츠카사의 두 눈은 진지하기 짝이 없다. 예측이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가버렸네, 루이가 멍하니 생각하는 동안 츠카사는 벗어던진 셔츠로 피투성이가 된 몸을 대충 닦아내며 말을 잇는다.
“네 생일에 뭘 선물해야 좋을지 오래 고민했어. 그야 너, 별종이잖아? 평범한 물건으로는 성에 안 찰 것 같았단 말이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하고, 또 어딘가 환상적이다. 츠카사는 일기장에 오늘 있었던 일을 또박또박 적어나가듯이 야무지고 담담한 목소리로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비밀을 루이에게 털어놓는다.
“몇 달 전에 하교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어. 며칠 밤낮을 매달려서 완성한 새 각본을 동생에게 읽어줄 생각에 좀 들떠 있었던 것 같아. 아직 겨울이었으니까 낮이 짧았어. 부활동을 마치고 학교를 나와 보니 해는 이미 다 진 뒤였고 내 시야는 너무 좁았어. 정신없이 횡단보도를 달리는데 문득 밝은 빛에 눈이 부시더라. 날카로운 경적 소리랑 운전석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귀에 꽂히더니, 다음 순간 몸이 붕 떴어.”
피를 닦던 츠카사의 손이 상처 하나 없는 가슴에 닿는다.
“……아마 그때 즉사했을 거라 생각해.”
즉사, 라는 단어를 들은 루이는 몸을 움찔 떤다. 차라리 악질적인 잔혹동화였더라면 좋았을 녀석의 이야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터무니없는 얘기인데도 전부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압감이 루이의 어깨를 짓누른다.
“……트럭은 피범벅이 된 아스팔트 도로를 뒤로하고 도망쳤고, 나는 곧 일어났어. 그때 처음 알았어.”
피를 얼추 처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츠카사는 혈흔으로 엉망진창이 된 교복을 가방 속에 도로 개어 넣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루이의 어깨를 붙잡는다. 무뎌진 두 시선이 거북하게 맞닿는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차에 치여도, 심장을 찔려도, 목을 졸려도, 옥상에서 떨어져도, 심지어는 분쇄기에 갈려나가도 악착같이 다시 살아나는 몸이야.”
츠카사는 루이의 손목을 잡아채 제 가슴팍에 얹는다. 정확히 심장이 자리한 지점이다. 두근, 두근, 두근……. 살가죽 뒤에 숨은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다. 루이는 그 심장 박동에서 아까까지는 꿈에도 상상해본 적 없는, 무심코 두렵다고 생각해버릴 정도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초조하게 침을 삼키는 사이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내 몸을 써서 네가 하고 싶은 연출을 마음껏 펼쳐 봐.”
연출가에게 멋대로 무거운 비밀의 족쇄를 채우고 종신형을 선고한 주역은 매정하게 웃음짓는다.
“어때, 지상 최고의 생일선물이지?”
……우와. 순수한 놀라움이 얼빠진 감탄사를 유도한다.
한명뿐인 관객이 된 연출가는 스테이지에 선 명배우의 마지막 대사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만다. 극장의 무대 위였다면 기립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쇼다. 텐마 츠카사가 꾸민 생일 축하 연극일 뿐이다. 이 상황을 일상의 영역 안쪽에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필사적으로 붙잡은 루이는 평정심을 조금 되찾는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흘러나온다.
“후후……, 솔직히 조금 믿기 어렵네. 이건 또 무슨 종류의 서프라이즈 쇼인 거니?”
“쇼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만해.”
“방금 날 직접 죽여 봤으면서.”
“그만, 싫어. 그냥 쇼라고 해.”
괜히 억지를 부려 본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는 마지막 발버둥은 입 밖으로 나오자 목소리를 얻어 기세를 탄다. 일단 오늘을 이렇게 넘기고, 내일부터의 일은 천천히 생각하는 거다. 루이는 피가 묻어 끈끈해진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웃는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말해준다면……,”
“야, 피하지 마.”
냉정하게 말을 자르는 한 마디가 루이의 기세에 기어코 찬물을 끼얹는다.
불가항력에 이끌린 시선이 툭 떨어진다. 혈흔으로 난잡해진 방바닥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피하지 마. 츠카사가 던진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귓가를 자꾸만 맴돈다. 입가에 덧칠했던 웃음기를 한순간에 지워 버린 루이는 불멸의 파트너를 응시한다.
“츠카사 군, 날 얼마나 심각한 별종으로 보고 있는 거야? 한계에 얽매여서 진부해지고 싶지 않은 건 맞아. ……그렇다고 배우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연출이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목숨?”
하, 하하……! 크게 웃어젖힌 츠카사는 고개를 숙이고 엉망이 된 바닥을 뒹굴던 커터칼을 주워든다.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잔혹한 불가사의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거.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은 원래의 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붉게 젖어 있다.
“아직도 모르겠냐……, 한 번 더 찔러볼래?”
언제부턴가 그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비일상을, 이제는 루이에게도 가차없이 권한다. 루이는 츠카사가 건넨 칼을 건네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츠카사는 자신의 신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취급받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스타’의 사명을 받아들이기 안성맞춤인 그릇이자, 파트너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치트키일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믿음이 가서 도리어 미지의 불안감이 머리를 사로잡는다.
불멸이라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이상 몸을 찢고 베는 격렬한 아픔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심장에 칼을 꽂았을 때 츠카사는 각혈하며 무척 괴로워했다. 그다지 동요는 없었지만, 살덩이를 비집고 깊숙히 파고들수록 숨이 흐트러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미간에는 주름이 잡히고,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익숙해진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그 뒤로 몇 번을 더 죽은 거야, 츠카사 군? 차에 치이고, 심장을 찔리고, 목을 졸리고, 옥상에서 떨어지고, 분쇄기에 몸을……, 대체 어디까지 겪어본 건데? 차마 캐물을 수 없었던 문장들을 목구멍 뒤로 겨우 삼킨 루이는 차분하게 대답한다.
“됐어, 그렇게까지 할 것 없어.”
칼을 선뜻 건네받은 루이는 칼날을 집어넣고 책상 위에 도로 돌려놓는다. 소중한 사람의 심장을 도축하듯 힘주어 도려내는 느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당시의 감각을 떠올리고, 가늘게 떨리는 손을 주먹으로 쥔다. 너는 피하지 말라고 했지. 자신을 동요하게 만든 한마디를 떠올리며 뒤늦게 머리를 굴린다.
녀석이 기획한 스테이지는 빈틈이 없다. 출입구와 비상 탈출구가 전부 봉쇄당한, 숨쉬기조차 버겁도록 밀폐된 무대 앞에 루이는 서 있다. 생일선물, 어서 받아줘. 츠카사는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 좋아, 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다.
“……츠카사 군의 말대로야.”
전부, 각본가를 겸하는 주연배우의 대본대로다. 단 한 번의 수긍은 간사하게도, 인간성 뒤에 숨겨 놓았던 천재 연출가로서의 본능을 재빠르게 해방한다.
“솔직히 흥미가 생기는 건 맞아. 아무리 나라도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불사의 몸? 뭐야, 그게. 엄청난 찬스잖아. 이렇게 된다면 분명, 지금까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잔뜩 시도할 수 있게 되겠지. 뇌내망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던 굉장한 연출 플랜까지……,”
풀려나온 문장들을 중얼중얼 늘어놓으며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공유받은 비밀은 루이를 옭아매는 족쇄이자, 동시에 상상 속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만드는 열쇠가 되기도 할 것이다. 루이는 그 무게와 달콤함을 냉정하게 저울질한다.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을 고민한다.
결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발화에 앞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래, 받아들일 테니까…….”
결국 연출가가 내어놓는 것은, 무대를 꾸민 배우가 쓴 각본의 마지막 대사다. 츠카사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천진하게 웃는다.
“생일 축하한다, 루이.”
루이를 와락 껴안은 츠카사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입술을 겹쳐 온다. 축축한 살과 살이 맞닿아 얽혀든다. 루이는 몇 번이고 해온 그 익숙한 입맞춤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주고받는 숨이, 안쪽까지 파고들어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혀가, 부대끼는 체온이 낯설기만 하다.
호흡이 벅차 입을 떼면,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만이 조용한 방에 울려퍼진다. 냄새가 밴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방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는 어느새 잘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한 손으로 지탱한 루이는 홀린 듯이 답례의 인사를 한다.
“고마워, 츠카사 군…….”
“앞으로도 멋진 연출을 부탁해.”
이렇게 한없이 상냥하면서 동시에 강압적이기도 한 부탁이 또 있을까. 역시 그는 언제나, 가능한 한 자신이 갈구한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남자다. 그런 그에게, 루이는 오늘도 조금 더 끈질기게 어울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어찌 됐건 오늘은, 지상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은 날이니까.
비로소, 루이의 미소에서 초조한 기색이 구름이 걷히듯 사라져 간다.
“……맡겨만 줘.”